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 발언하는 최상목 부총리. 연합뉴스환율 급등과 증시 하락, 수출 증가율 둔화 \'3중고\'로 한국경제가 휘청이던 지난 3일 밤 대통령이 기습 선포한 비상계엄 사태 뒷수습으로 관계 당국은 분주해진 모습이다. 책임지지 않는 대통령 대신 국무위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탄핵정국을 맞은 국회가 정치적 셈법에 골몰하면서 장기화할 리더십 공백에 시스템적 위기로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다
관계 당국은 연일 \'안정을 되찾고 있다\'며 시장 달래기에 나섰지만, 해외에선 이번 사태로 이미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가 손상된 만큼 앞으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진 상대적으로 억제된 위험이 대통령 사임이나 탄핵 없이 교착상태가 장기화하면 비로소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계엄 사태 발발 직후부터 경제팀 풀가동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경제·금융당국은 계엄령 발효 30여분 뒤인 지난 3일 밤 11시 40분쯤 긴급 개최한 F4(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시작으로 수차례 관련 회의를 열며 연일 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한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사태 직후 첫 회의에서 \"무제한 유동성 공급\", \"모든 가능한 시장안정 수단 총동원\" 등을 언급하며 F4를 매일 개최해 위기 관리 체계를 상시화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오전 1시쯤엔 기재부 1급 이상 간부회의를 열어 상황을 점검하고 날이 밝자 7시 다시 F4 회의를 진행한 뒤, 곧바로 긴급경제장관회의를 이어가기도 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도 계엄사태 이튿날 오전 임시 회의를 열고 RP(환매조건부채권) 비정례 매입 계획을 의결했다. 계엄사태로 인한 금융불안이 경제위기로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해 긴급히 시중 유동성 공급에 나선 것이다. 다음날엔 필요시 국고채 단순매입과 외화RP 매입을 통한 외화 유동성 공급도 대비 계획도 부연했다.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장 및 유관기관장 등과 \'금융상황점검회의\'를 열고 채권시장과 자금시장에 최대 10조 원 규모 증권시장안정펀드 및 총 40조 원 규모 채권시장안정펀드 준비와 회사채·CP(기업어음) 매입 프로그램 가동 방침을 발표했다.이밖에도 당국은 시장이 \"갈수록 안정됐다\"며 \'정상화\'될 때까지 경제·금융상황 점검 TF(태스크포스)를 신설·가동해 금융·실물경제 상황 전반에 대한 24시간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필요시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비상대응계획)을 신속히 단행할 계획이라고 재차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시장이 안정됐다\'는 발표와 다르게, 경제계와 금융가 일각에선 \"환율이 워낙 오르고 증시도 워낙 떨어졌기에 지금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란 푸념도 나온다.환율 급등·증시 하락·수출 꺾임새 속 닥친 정치 위기연합뉴스실제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후 원달러 환율은 1444원까지 급등했다가 전날 1415.1원(오후 3시 30분 종가 기준)원으로 마감했고, 코스피는 계엄사태 이튿날 2450.76포인트로 1.97% 하락 출발한 뒤 전날엔 2441.85포인트에 마감했는데, 사실 이들 결괏값만 놓고 봐도 그 자체로 컨틴전시 플랜 가동이 필요한 \'비상상황\'에 가깝다.가뜩이나 한국경제는 최근 부진한 주요 지표와 불확실성으로 적신호가 켜진 터였다. 미국 대선 이후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다시 돌파한 뒤 내려올 줄을 모르고, 코스닥·코스피는 고공행진하는 S&P·나스닥과 디커플링된 채 신저점을 경신 중이다.기습 계엄사태 이틀 전인 지난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지난달 수출입 동향에서는 대미(對美)·대중(對中) 수출 동시 감소와 함께 수출 증가율이 14개월 만에 최저치(1.4%)를 기록, 4개월 연속 둔화한 것으로 확인됐다.지난해부터 줄곧 고물가와 내수침체를 방치하면서까지 고환율·중금리를 유지한 정책기조의 배경엔 수출을 통한 성장률 방어가 중요하게 자리했는데, 수출마저 흔들리며 내년 1%대 성장률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지난 5일 한은이 발표한 3분기 경제성적표에선 GDP(국내총생산) 분기별 성장률이 0.1%를 기록했고, 특히 수출이 0.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한은은 계엄이 빨리 해제돼 성장률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지만, 한국 밖에서 보는 전망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제 기능 못하는 리더십, 경제에 장기적 악영향\"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해외에서는 연이틀 대통령의 계엄 사태가 향후 한국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중동 지역 대표 매체 알자지라는 지난 5일자 \'윤 대통령이 임기 보전으로 경제 신뢰 흔들어(After pledging renewal, South Korea\'s Yoon shakes faith in economy)\' 제하 기사에서 한국과 아시아 경제 관련 전문가들을 두루 인터뷰한 뒤 \"대통령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시도는 계엄령 선포로 시장이 흔들리며 좌절됐다\"고 평했다.\'삼성 라이징\'의 저자 제프리 케인은 알자지라에 \"한국은 홍콩에서 대만에 이르기까지 중국(권위주의)의 영향력이 큰 지역에서 방벽 역할을 해야 하는데, 계엄령으로 시장이 놀랐고, 이는 한국이 애널리스트들이 생각하는 만큼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그는 \"이번 사태가 지속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이 겁먹었을 것\"이라며 \"한국의 경제강국 지위가 영원히 보장되는 건 아닌 것\"이라고 경고했다.영국 캐피털 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의 개러스 레더 아시아 수석연구원은 \"2006년 쿠데타 이후 정치적 혼란에 시달려온 태국이 \'제 기능을 못하는 리더십\'이 어떻게 경제를 침체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태국은 18년이 지났지만 투자가 엄청나게 둔화되고 성장이 정말 어려움을 겪었다\"고 짚었다.계엄사태 직후 한국의 경우 \"지금까지는 그 여파가 상대적으로 억제됐지만, 교착 상태가 장기화되면 한국 금융 시장과 경제 전반에 최악의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지적이다. 레더 연구원은 \"윤 대통령이 계속 사임을 거부하고 집권여당도 탄핵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는다면 그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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