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가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가짜뉴스(fake news)'는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 ‘고의로’ 생산·유포된 허위 조작 정보이다. 실시간 정보 생산과 유통이 가능한 ‘미디어의 발달’과 내가 믿는 것이 곧 진리가 되는 ‘탈진실의 시대(Post-truth era)’는 가짜뉴스 증식에 적합한 토양이 되고 있다.
사실을 조작하거나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일은 마음의 상처나 도덕적인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가짜뉴스는 불안, 분노, 혼란, 분열을 조장하며 개인과 기업, 사회, 국가를 위태롭게 할 만큼 위력이 크다.
2017년 현대경제연구원은 전체 기사 중 1%를 가짜뉴스라고 가정할 때 연간 30조900억원의 경제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추산했다. 무려 국내총생산(GDP, 2015)의 1.9%이다. 2013년 해킹된 AP통신의 트위터 계정이 ‘백악관이 공격당했다’는 가짜뉴스를 뿌려 주가 지수를 크게 폭락시킨 사건이나 2022년 11월 제약회사 일라이릴리의 가짜 계정의 ‘인슐린 무료 공급’ 트윗이 주가를 떨어뜨린 사건은 가짜뉴스의 경제적 피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가짜뉴스는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더 기승을 부려 위기에 놓인 이들을 더 큰 위험으로 몰아넣는다. 2020년 메탄올이 코로나감염균을 없앤다는 가짜뉴스 때문에 이란에서 500명 이상 사망했다. 얼마 전 소셜 미디어에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에 항복을 선언하는 가짜 동영상과 하마스 공습 이후 이스라엘 총리가 병원에 이송됐다는 가짜뉴스가 돌면서 전쟁의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 정부, 가짜뉴스 근절 추진…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도
최근 우리나라 정치권도 가짜뉴스와 그 대응 방안을 두고 시끄럽다.
지난달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가짜뉴스가 개인에 대한 인식과 평판을 떨어뜨리는 수준을 넘어 사회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며 가짜뉴스 근절 추진을 예고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가짜뉴스 신고 창구를 열어 신고접수·신속심의·후속구제를 원스톱 처리하는 패스트트랙을 활성화하고, 네이버, 카카오 등 포털 사업자에 심의 사실을 알려 ‘임시 삭제’ 같은 선제 조치로 확산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가짜뉴스의 정의 및 판단 기준 ▲사업자 자율규제 및 심의제도 개선 ▲악의적 허위 정보를 유포한 매체를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통합 심의제 등 관련 입법을 지원하고 연내 종합대책을 수립할 계획도 공개했다.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전제 ‘정보 접근성’ 자체가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가짜뉴스가 불처럼 번질 때 신속히 대처하는 것이 실질적인 피해 구제이며 가짜뉴스 생산자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짜뉴스의 독성에도 불구하고 규제 대응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많다. 언론의 권력 감시 및 견제 역할과 표현의 자유를 약화시키는 부작용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짜뉴스 판별 및 징계는 표현의 자유를 기반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상당히 조심스러운 일이다. 단순한 현상조차 해석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은 물론 숨겨진 ‘의도’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있다.
기존 언론의 생리대로 1차 보도, 반박·해명 보도, 재반박 보도를 통해 정확한 정보가 유통되게 하면 된다는 주장, 기존 법률에 근거한 사법적 절차에 따라 언론 피해 구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 등이 나온다.
가짜뉴스는 전 세계가 앓고 있는 문제다. 많은 국가들은 허위·불법·유해 콘텐츠에 대한 관리 책임을 정보 유통 역할이 큰 대형 플랫폼에 묻는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위반 시 연 매출 최대 6~10%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높은 수위의 처벌이 따르기도 한다.
미셸 도넬란 영국 과학혁신기술부 장관은 플랫폼의 콘텐츠 관리를 의무화한 ‘온라인 안전법’에 대해 “현실에서 잘못된 행위라면 온라인에서도 불법으로 규제하는 게 상식적”이라면서, 이를 통해 안전한 온라인 공간과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은 플랫폼이 명확한 삭제 기준을 수립하고 허위·불법·유해 콘텐츠의 신속 차단 및 예방 체계를 갖출 것을 요구하는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도입했다. 유럽연합은 DSA가 위기 상황에서도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는 선거 기간에 한정해 법원 명령에 따라 가짜뉴스를 즉각 차단할 수 있는 ‘정보조작대처법’을 두고 있다. 폴란드와 오스트리아는 선거 기간 동안에, 스페인은 국가 안보 및 제3국 선거 개입이 관련된 경우 언론사까지 허위 정보 대응 범위를 확대한다.
◇ 가짜뉴스에 취약한 사회
가짜뉴스는 자극적인 소재로 관심을 끌거나 감정을 일으켜 특별한 목적과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대중 인식과 심리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 정보, 사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은 정보로 진위 판별을 어렵게 만든다. 개인과 사회가 정확한 사실에 입각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들고 불안, 불신, 극단화를 강화하여 건전한 여론 형성, 가치 공유, 질서와 화합을 방해한다.
사람은 이러한 가짜뉴스에 취약한 편향성이 있다. 제한된 정보처리 능력으로 인해 잘못된 추론(인지편향)을 하고 기존 신념을 확증하는 유리한 정보만 취사선택(확증편향)한다. 누구나 기존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를 접할 때 안정감을, 그렇지 않을 때는 불편감을 느낀다.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도 한번 각인된 인식은 잘 바뀌지 않는다. 기존 견해와 다른 정보를 접하면 분노와 반발 심리가 생겨 기존 견해를 더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처음 정보를 접할 때 느낀 감정은 정보가 수정된 후에도 대상 평가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졌다. 관점, 해석 방식, 감정의 끈질긴 주입이 결국 정보 수용 및 해석 기능 자체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보다 개인의 감정과 신념을 더 중시하며 주변 사람이 옳다고 하는 것을 진리로 여기는 시대적 분위기도 가짜뉴스 확산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2016년 옥스포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탈진실’의 시대에 전문 지식과 증거의 권위는 약해졌고 참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거짓에 대한 민감도도 떨어지고 있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이러한 취약성을 악화하고 가짜뉴스 문제를 심화했다. 소셜 미디어는 정보 생산자와 정보 사용자의 경계가 없는 손쉬운 정보 생산·유통 채널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제된 정보가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미검증 정보가 전파되고 있다. 관심이 곧 수익이 되는 구조는 고의적이고 반복적인 가짜뉴스 생산을 부추기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는 이용자가 원하는 말, 듣고 싶은 말을 해준다. 알고리즘은 조회, 시청, 검색 기록을 토대로 편집·선별된 정보를 제공한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집단을 이루기 쉬워 시공간 제약 없이 선호하는 관점의 정보를 반복 수용할 수 있다. 인지편향, 확증편향에 제공 정보의 편향까지 더해져 객관적 사실과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을 더 어렵게 한다.
만연한 가짜뉴스로 정보 환경이 오염된 상황에서 대중 정보 식별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식이 요구된다. 가짜뉴스의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 개인도 정보 식별 역량을 강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 출처·생산자 확인, 비판적인 읽기, 감정 반응 유도 여부 확인 등을 통해 가짜뉴스 판별 능력을 높일 수 있다. 인지적 한계와 편향성을 인정하는 겸손과 용기, 다른 의견을 수용적으로 들으려는 의지도 도움이 된다.
◇ 가짜뉴스 시대에 언론의 역할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제공자로서 언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언론은 사실과 의견을 수집·분석하여 대중에게 전달하고, 권력 감시와 견제, 의제 설정, 여론 형성을 지원하며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중요한 축이다.
안타깝게도 국내 언론과 기자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낮다. 작년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실시한 미디어 신뢰도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언론은 46개국 중 40위를 했다. 독자 구미에 맞는 자극적인 기사, 이해관계에 매여 사실을 과장·축소하는 기사 등 정확성, 진실성, 공익성에 대한 타협이 신뢰를 갉아먹었다.
심층 취재와 철저한 사실 검증을 기반한 양질의 기사를 제공해 가짜뉴스가 틈탈 수 있는 불안과 불확실성의 공백을 없애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지향점이는 생각이 든다.
◇ 퍼블리시, 좋은뉴스를 고수하는 환경을 만들다
법 제도, 독자, 언론인과 언론사의 개별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언론이 좋은 언론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돕고 독려하는 기술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
퍼블리시는 블록체인을 통해 좋은뉴스의 생산과 소비를 돕는 언론 생태계를 구현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블록체인이 가짜뉴스 억제와 언론 혁신을 돕는 도구가 되길 기대하며 기술 구심점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보의 신뢰성, 투명성, 처리 효율성을 개선하는 블록체인은 좋은언론 생태계 기능을 보완·보조할 수 있다. 해외에서도 가짜뉴스 퇴치나 정보 조작 방지에 블록체인을 활용한 사례들이 많다.
뉴욕타임즈의 ‘뉴스 프로브넌스’ 프로젝트는 블록체인에 보도 사진의 메타 데이터를 기록하여 가짜뉴스 억제를 시도했다. 네덜란드의 블록체인 기반 가짜뉴스 퇴치 프로젝트는 2020년 유럽연합혁신위원회의 사회공헌 부문 최우수 프로젝트로 선정됐었다. 중국 당국이 코로나 폭로 의료진 인터뷰 기사를 삭제하자 이를 블록체인에 올려 정보 접근을 지켜낸 사례도 있다.
퍼블리시는 먼저는 가짜뉴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블록체인을 활용한 ‘팩트체킹’에 접근했었다. 2020년 9월 뉴스 기사 및 콘텐츠 팩트체킹 방법에 대한 블록체인 기술 특허도 취득했다. 뉴스 생산자 정보, 날짜, 장소를 블록체인에 기록해 보존하고 언론사 및 언론인에 대한 블록체인 기반 평가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얽힌 실타래를 풀듯 사실 관계를 밝혀낸다는 점에서 팩트체킹은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정보의 홍수’ 시대에 충분한 대책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확산된 가짜뉴스에 대한 팩트체킹은 업질러진 물을 담아 정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팩트체킹은 치우침 없이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지만 진실에 대한 기준, 사건을 보는 시각이 주관적이고 여러 갈래로 나뉘는 것도 확인했다. 가짜뉴스의 반대는 팩트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퍼블리시는 가짜뉴스 판별에 맞췄던 초점을 좋은뉴스 생산과 소비 문화를 키우는 쪽으로 바꿨다. 좋은뉴스를 고수하는 생태계가 독자와 사회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가짜뉴스와 불량뉴스를 자연스럽게 지양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퍼블리시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통해 언어의 혁신을 이룬 것처럼 뉴스의 혁신을 꿈꾸며 훈민정음의 바탕이 된 ▲애민 ▲자주 ▲창조 ▲실용 정신에서 좋은뉴스의 기준을 따왔다.
독자와 사회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가진 기사, 정치·경제적 이해에서 독립된 기사, 독자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거나 입맛을 맞추기 위해 기존 관점을 반복 재생산하는 기사가 아니라 사안을 바라보는 창조적이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기사, 더 나은 개인과 사회를 위해 실용적인 대안을 제안하는 기사가 진실되지만 희망을 주는 좋은뉴스, 가짜뉴스의 거짓과 위협에서 ‘해방하는 뉴스(redemptive news)’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는 퍼블리시는 기사 읽기, 공유, 댓글에 실질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기사와 독자의 관계성을 강화하고 언론 활동 참여를 촉진하고 있다. 그리고 미래에는 블록체인의 언론 지원 방식은 더 다양해지고 고도화될 것이라고 믿는다.
블록체인은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 실행하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는 기준을 적용하는 공정한 환경과 더 매끄럽고 인위적이지 않은 생태계 운영을 구현할 수 있다.
또한 무명의 사람들이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생태계 조성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인프라 기술이기 때문에 특정 기준을 고집하는 경직된 공동체가 아니라 발전과 개선의 여지가 있는 생동하는 생태계라는 강점도 있다.
블록체인 기반 탈중앙화자율조직(DAO)은 구성원이 생태계 규칙을 제안하고 공동체 동의와 지지를 얻어 규칙을 확립하는 운영 방식을 지원한다. 모두가 동의하는 모두를 위한 새로운 질서와 기준을 만들어 좋은뉴스를 지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더 나은 생태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훈민정음 정신을 담은 좋은뉴스와 건전한 언론 조성에 유익한 모든 행위에 대한 더 세밀하고 적절한 보상과 지원 방안을 개발해 언론이 가진 유익을 극대화하는 일,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축으로 충실히 역할하는 생태계로 성장하는 일을 함께 고민할 수 있다. 언론을 위한 블록체인 기술 실험이 가짜뉴스가 설 곳이 없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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